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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 무관심이 지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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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특히 가난하고 취약한 이들을 돌보는 것에 실패했다.
돌봄의 위기는 지난 40년 동안 특히 심각해졌는데, 이는 많은 나라가 수익 창출을 삶의 핵심 원리로 보편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원칙을 받아들이면서다. 이는 곧 금융자본의 이익과 흐름을 조직적으로 우선시하는 반면 복지국가와 민주적 절차와 제도들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을 의미했다.
- 돌봄과 돌봄 노동의 폄훼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돌봄은 대체로 여성, 여성적 또 ‘비생산적’이라고 여겨지는 돌보는 직업과 연관되어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어 왔다. 그래서 돌봄 노동은 변함없이 저임금과 낮은 사회적 지위에 묶여 있었다.
- 팬데믹은 우리 대부분이 제대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고 또 받지도 못하는 결과를 낳은 신자유주의 시장에 의해 자행된 폭력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오랫동안 낯선 사람들이나 우리와 거리가 먼 사람들은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도록 부추김을 받으면서,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역량마저 위축되었다.
- 여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가 돌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 ‘돌봄’은 사회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사회적 활동이다. 무엇보다도 돌봄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우리의 상호의존성을 인지하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양쪽에 (즉 우리 모두에게)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적절한 돌봄이 불가능하다. 돌봄은 ‘여성의 일’이 아니다. 착취되거나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된다.
무관심한 세상
- 신자유주의적 경제성장 정책이 너무 많은 나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면서 본질적으로 돌봄이 없는 경제성장 중심의 정책 실행이 국민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보다 우선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들은 전 세계의 희생을 대가로 소수를 부유하게 하는 의제들을 자유롭게 추구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거대 석유기업, 거대 제약회사, 구글과 아마존 같은 첨단기술 기업들이 다수의 국가보다 더 많은 권력과 부를 가지게 되었고 이들은 누구에게도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과 그것이 만들어낸 괴물 기업들은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간에 이미 존재하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동시에 환경과 관련된 부당함과 전쟁을 조장했다. 또 권위주의 정권과 국수주의 논리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준으로 부상하는 데 일조했다.
- 이러한 전 지구적 차원의 심각한 돌봄의 결여는 지구 자체의 위기를 만들었다.
무늬뿐인 돌봄만 남은 시장
- 정부야말로 규모가 큰 초국가적 기업들이 전례 없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운 장본인이다.
- 우리가 무늬뿐인 돌봄(carewashing) 이라고 부르는 겉만 그럴싸한 행동에 사회적 책임을 지는 ‘시민’을 자처하는 많은 기업이 사업의 합법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참하고 있지만 사실상 불평등과 생태계 파괴에 일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은 더 나아가서 그들이 만들어낸 돌봄의 위기를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로 삼는다.
무관심한 국가
-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이상적인 시민이란 자율적이고 기업가적이며 실패를 모르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의 승승장구는 복지국가의 해체, 그리고 민주적 제도와 시민 참여의 와해를 정당화한다. 돌봄이 개인에게 달린 문제라는 생각은 우리의 상호취약성과 상호연결성을 인지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다.
무관심한 공동체